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16년 총선이 야당의 승리 속에 막을 내렸다.
모국을 떠나 해외에서 살면서 때로는 안타까움과 분노로 때로는 기쁨으로 일희일비 하던 마음 속에, 오랜만에 들뜨고 흥분된 기운이 가득찬 하루였다.
이 세상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서로 신뢰하고 배려하며 공정한 경쟁 속에서 성공한 이들을 축하해 주고 실패한 자들에게는 용기를 주는 그런 나라를 만들어가는 정치인들이, 지도자가 그리고 국민들이 되기를 또 다시 바래본다.
국민이 정말 행복하고 국가를 신뢰하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 가는 이들이 되기를 바래본다.
편법과 부정부패가 발붙이지 못하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국민들을 섬기는
삶의 무게가 버거운 이들이 위로 받고 도움을 받는
희생하고 배려하는 이들이 존경 받는
정의와 평화를 사랑하는
국민의 생명을 국가 존립의 가치로 여기는
참된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이 되기를 다시 한 번 바래본다.
민주적 소양과 훈련이 되지 않은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재난이 됩니다. 그런데 현실 세계는 공정함을 견지하는 사람은 인기가 없고 편향적인 카라스마를 지닌 사람들을 우상처럼 모시는 경향을 보여줍니다. 저는 한국에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큰 오해였고, 어둠이 깊으면 새벽이 온다는 것이 진실되다는 것이 새삼스럽군요. 정치적으로 보수적 진보적 성향은 공맹시대에도 존재했지만, 자신의 편향적 입장을 인정하면서 공정함을 잃지 않은 지도자가 나오면 참 좋겠죠.
박근혜처럼 아버지의 등에 업고 등극한 사람들 속에 수많은 무임승차자(free riders)들이 있었고, 또 수많은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지도자가 카리스마를 상실하고 더이상 왕/여왕의 역할을 못할 때, 추종자들은 그 왕/여왕을 살해하고 새로운 왕을 우상으로 모시고 또 살아갑니다. 이것은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죠. 이것은 민주적 훈련이 덜 된 상태를 일컫는 것입니다.
크리스챤으로서 이러한 사회적 문화적 폭력에 맞설 수 있는 있는 태도를 "영성적 민주"(spiritual democracy)라고 봅니다. 어떤 특정 종교에 지나친 평향성을 버리고 가급적 여러 종교를 공정하게 보려는 종교학도 영성적 민주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보구요. 종교학과 별도로 크리스챤으로서도 우리는 영성적 민주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작지만, 최소한 민주적 교회를 지향한다는 테제를 갖고 있고, 이러한 민주적 교회는 교회의 민주화라는 개발도상국적인 과제를 넘어선 상태라고 보구요. 그래서 우리는 이제 교회의 민주화를 넘어선 민주적 교회라고 보구요. 우리가 민주적 영성을 가지고 있을 때, 민주적 하나님이 자기 발언을 하시는 것이죠. 그러므로 위계질서를 강조하는(hierarchical) 전통적인 삼위일체론은 민주적 삼위일체론으로 바껴야겠죠. 신의 영역은 신비의 영역이고 우리의 마음이 민주적이고 열려 있는만큼 민주적 하나님을 만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