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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966년, 한인연합교회의 창립과 이상철목사

출처: http://www.coreamedia.com/cancouver/v2/article_01.asp?id=haninsa&no=11

◆ 한인연합교회는 정신적 기둥으로 ...

사람이 사는 세상을 두 가지 기둥으로 나누어 말하라고 한다면 정신론과 유물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교묘하게 연결돼 있어 어느 한가지만 없어도 완벽한 삶을 구사하지 못하고 한번의 방황과 삶이 텅 빈 것 같은 허망함을 경험하게 된다.

밴쿠버한인사도 이 두 가지의 절묘한 결합이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한인들이 밴쿠버에서 정착하기에 최선의 노력을 했던 것들이 유물론적으로 해석한다면 정신론을 담당했던 정신적인 지주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상철 목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한인연합교회라는 역사적인 조직이다.

밴쿠버한인사의 정신적인 기둥인 한인연합교회 그 기둥을 굳건하게 한 이상철 목사, 그는 1961년 밴쿠버 유니온 신학교에서 1963년까지 공부하게 된다 그 후 한국으로 들어갔다가. 김기순,박동숙,오장옥, 장범식, 현순남, 심선식씨 등 6명은 한인교회 창설을 위해 이상철목사를 다시 초빙하는 일을 추진한다.

"내가 61년도에 신학을 공부 할 때 오장옥 의사가족과 심선식의사 가족이 살고 있었고 죤리라는 젊은 분이 써리쪽에 있었다, 우리는 종종 모여서 한국음식을 즐길 때면 내가 식기도를 하곤 했다. 이것이 아마 밴쿠버 한인교회의 출발점이 아니었나...."( 이상철 목사 밴쿠버한인연합교회 20년사중에서)

이렇게 식기도로 시작 된 한인들의 정신적 공동체는 1963년 오도명(캔쿠버 7호 참고)씨가 밴쿠버로 오면서 한인연합교회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게 된다.

"오도명씨는 영어를 잘 알지 못하는 서울 영락교회의 권사님였다 , 하지만 주일마다 백인교회에서 예배를 정성스럽게 들이고 그것을 본 백인 교회의 목사님이 어느 날 나를 찾아와 안권사의 믿음과 용기를 칭찬했습니다. 그 후 종종 두사람이 만나 한국말로 찬송도 부르고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하고 그럴 때마다 눈물을 적시던 것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상철 목사 밴쿠버한인연합교회 20년사 중에서, 캔쿠버 7호 참고)

◆ 이상철목사, 다시 밴쿠버로 오면서 한인연합교회 창립은 구체화 되고 ...

이렇게 두 사람의 작은 예배 행위는 이미 한인교회를 성장시키고 있었고 한인들의 정신적인 기둥인 연합교회의 필요성을 모두 인식하게 되는 시기에 이른다.

이런 인식은 6인의 추진위원들을 한인교회를 창립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하게하는 동기로 작용하게 된다.

이런 노력 결과 리치몬드에 있는 연합교회 (United Church Congregation)에서 일본인을 위해 사역 할 영어와 일어가 능통한 목사가 필요하다는 초청 담당목사인 씨버 (Rev. Lorence Sieber)의 말은 이상철 목사를 다시 밴쿠버로 오게 하는 기회가 된다.

그 조건을 갖추고 있는 이상철 목사를 6명의 추진위원들은 추천했고 그 추천을 받아들인 씨버목사는 1965년 이상철 목사를 스티브스톤 교회의 담임목사로 초청하게 된다.

이 목사는 그 교회에 사역을 하는 한편 그는 한인들과의 기도 모임을 가지면서 서서히 한인 교회의 태통을 준비하게 되고 (캔쿠버 4호 참고) 이런 움직임들은 1966년3월6일 유니온 신학교 강당에서 첫예배 시간을 갖게 된다.

- 우리들 중에는 교회에 적을 두고 신앙생활을 해 오던 분들이 있어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리기를 원하는 분도 있고, 친교를 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매달 첫 일요일 오후 2시부터 3시까지는 유니온 컬리지 강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3시부터 4시까지는 휴게실에서 커피와 함께 친교시간을 가질 계획입니다.....- (이상철 목사가 첫 모임을 알리기 위해 쓴 서신내용 중)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무의 상황, 존재하고 있는 것은 한국을 떠나 어설픈 이민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몇 명의 한국인과 그들의 기도와 노력은 한인사의 정신적 뿌리이며 이민자들의 절반의 기둥인 한인연합교회를 창립시킨다.

이렇게 시작 한 한인연합교회는 한 달에 두 번씩 모임을 가질 수 있었던 1966년 12월까지 매달 첫째주 일요일에 모임을 갖게 되었고 1967년 9월부터는 매주, 1967년 캐나디언 메모리알 교회에서 예배와 모임의 시간을 갖는다.



<< 한인 연합교회가 최초로 예배를 들였던 밴쿠버 신학교회 앞에서 기념 촬영 (1966년 3월 최초로 예배, 사진을 찍은 시기는 창립1주년 기념 예배 후. 1967년 3월), 아래 사진은 현재 한인 연합교회.





◆ 초기 한인사의 중요한 인물, 이상철목사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이 하나님이기에 그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실천한 것이 오늘의 한인연합교회입니다. 아무것도 없이 오직 믿음과 기도로 시작해 이루어진 ...... 어려움과 고통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을 그 기회를 통해 교회를 더 발전시켰고 교인들의 신앙을 발전시켰다 ...오로지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함 외에는......" 라고 말하는 이상철 목사는 1969년 5월 토론토 한인연합교회로 전임 가기 전까지 한인사의 정신적 기둥을 굳건히 받치고 있었고 1966년8월 한인연합교회 안에 만들어 진 한인회 제 1대 회장으로도 일을 한다.

" 어떤 형태의 소외든 소외는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할 가장 비 인간적인 행위이다 초기 이민자들은 많은 것에서부터 소외를 당했다. 문화와 경제 그리고 종교, 하지만 한국인들은 그 소외의 벽을 스스로 넘었고 무엇인가를 만들어갔다. 한인연합교회는 그런 초기 이민사의 역사적인 흔적이고 소외를 벗어난 하나의 쟁취물이다. 물론 하나님의 뜻하심과 함께 ...." 소외 , 이상철 목사,그는 소외를 용납하지 않는다. 정치적 종교적으로도 소외되고 있는 난민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그는 지금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 한인연합교회는 기독적인 신앙공동체라는 개념만으로 설명 할 수 없다. 한인연합교회는 한인들에게 정보센터였고 한인들이 서로 의지하고 위로했던 힘의 근원지였다. 그래서 한인 연합교회의 역사는 반은 한인공동체와 함께하는 교회로, 이후 절반은 한인 기독교 공동체로 설명...."라는 김풍환씨의 말대로 한인연합교회는 초기 한인사이다.

특히 밴쿠버의 한인사 중 초기 한인들은 모든 기억하고 있다. 진리 안에서의 절대 자유를 외쳤던 이상철목사를, 사회와 종교에서 소외 받았던 자를 따뜻하게 감싸 안았던 그를,

그는 이민생활속에서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위로하고 이런 한인들을 모아 서로 위로하고 하나가 되게 했던 그는 밴쿠버 한인사의 중요한 역사의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다음 10회는 1966년 8월17일, 한인회 편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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